본문 바로가기

종교

방지일

방지일 목사 소천] '입관예배'…고인의 숭고한 뜻 기리며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4.10.11 23:02 | 수정 2014.10.12 08:59

   

 

[기독일보] 국내 최고령 목회자이자 한국교회의 '큰 어른' 방지일(103·영등포교회 원로) 목사의 입관예배가 11일 오후 8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서 거행됐다.

▲영등포교회 담임 임정석 목사가 입관예배 말씀을 전하고 있다.  ©김재모 기자

이날 임정석(영등포교회 제14대 담임) 목사는 '본이 된 목회자(고전4:1~2)'라는 제목으로 입관예배 말씀을 전하며 "방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목회자로, 또한 죽도록 충성한 본이 된 목회자셨다"고 고(故) 방지일 목사의 생애를 증거했다.

임 목사는 "방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본이 된 목회자셨다. 누구나 공감하며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복음의 일꾼으로, 복음과 그리스도를 강조하셨다. 교회를 담임해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으면 대부분 교회장으로 또는 노회장, 총회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있다. 방 목사님은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됐다"며 "이렇게 된 것은 이 시대 속에서 모든 목회자의 사표이자 본이 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을 사셨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기에, 오직 그리스도의 일꾼, 오직 그리스도 이 점만 주장하셨고 본이 되셨다. 때문에 '죽음에 대한 걸맞은 장례는 한국기독교회장이다' 인정이 되셔서 본 (예장 통합) 총회 주관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 목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대사로서 항상 당당하셨다. 흔들림이 없으셨다. 100세가 넘으셔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목회자답게 말씀을 전하셨다. 또한 죽도록 충성한 분이셨다"면서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죽도록 충성하셨다. 자주 사용하셨던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자로서 목회자로서 늘 그런 모습으로 사셨다"고 증거했다.

▲11일 오후 8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자 빈소에서 입관예배가 치러지고 있다.  ©김재모 기자

이날 입관예배의 축도는 덕수교회 원로인 손인웅 목사가 담당했다. 손 목사는 "우러러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오니, 우리 한국교회를 위해서 한세기를 넘어 생애를 바쳐 충성하신 우리 방지일 목사님, 이제 하나님 나라로 올려 보내 드리오니 천국 천사와 함께 영접하여 주시고 의와 승리의 면류관을 씌어 주시고 영생복락 안식을 명해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한편, 12~13일까지 이틀간 위로예배가 드려지며, 14일 오전 9시에는 서울 종로 연지동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한국기독교회장'으로 고 방지일 목사의 장례예배가 치러질 예정이다.

 

 

 

국내 최고령 목사 방지일 별세, 향년 103

  • 뉴시스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입력 : 2014.10.10 19:54

    
	국내 최고령 목사 방지일 별세, 향년 103
    한국교회의 산 증인이자 기독교계 최고원로 목사인 방지일(영등포교회원로) 목사가 10일 새벽 성북구 인촌로 고대안암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3세.

    지난 9일 오후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방 목사는 이달 초까지도 북한 선교를 위한 기도회 행사에 참석하는 등 외부활동을 이어왔다. 지난해 3월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정정한 모습으로 설교하기도 했다.

    방 목사는 1911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목사 방효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천 신성중학교와 평양숭실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평양장로회신학교 재학 당시 평양대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로 일하다가 1937년 졸업과 함께 목사로 안수 받았다. 1957년까지 중국 선교사로 활동했다. 당시 일본은 대동아선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가입을 강요했는데 방 목사는 이를 거절한 바 있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북한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했으나 서방 언론을 통해 최후까지 남은 기독교 선교사로 소개돼 1957년 한국으로 와 영등포교회에 부임했다. 1979년 영등포교회의 목사직에서 은퇴했다.

    예장통합 총회장,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한국교회연합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2010) 등을 썼다.

    한국교회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한국교회의 존경받는 큰 어른을 잃었다는 슬픔과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도 "슬픔과 애통함에 잠기기보다 방 목사님이 한국교회에 남긴 보석같이 빛나는 발자취가 헛되지 않도록 건강한 한국교회가 되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 아들 선주 씨 부부와, 딸 선자 씨 등이 있다. 14일 장례예배가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춘천 선산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방지일(1911년 ~ 2014년 10월 10일[1])은 개신교 목사로 영등포장로교회의 원로목사였다. 그는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평양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과 대한성서공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2]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대한감리회  (0) 2014.11.29
    강원도 기독교  (0) 2014.10.24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0) 2014.09.02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0) 2014.08.29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0) 201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