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조씨(淳昌趙氏)
시조 조자장(趙子長)은 고려 때 순창 호장을 지냈다. 그래서 후손들이 선조들의 토착지인 순창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자장의 현손(고손자:손자의 손자) 5세손 조인평(趙仁平)은 고려 명종 때 계룡산의 도적 망이.망소를 토평하여 일등공신으로 대장군에 올랐다. 그의 아들 6세손 조광명(趙光明)은 문하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조광명의 아들 7세손 조문전은 충렬왕 때 대호군에 올랐다. 조문전의 아들 8세손 조염은 광정대부, 정당문학을 지내고 1293년 이곳 충북 괴산군 송평리에서 탄생하시어 고려와 원나라의 과거시험에 급제하시고 말년에는 예문관,대제학을 지내셨다.문정공 8세손 조염(趙廉)의 맏아들(장남) 9세손 조봉은 판도판서로 순성군에 봉해졌다.
차남 9세손 조신(趙紳)은 고려말에 진사였으나 고려가 망하자 충북 괴산의 송평으로 은거했다.
조선조에서 한성판관을 지낸 조흔, 병조참의에 추증된 15세손 조복, 훈련주부와 양지현감을 지내고 형조참의에 추증된 16세손 조덕공(趙德恭),찰방을 지낸 16세손 조덕용(趙德容)도 유명하다. 영의정 유성룡의 둘째 사위로 문경현감을 역임한 17세손 조직(趙稷)과 趙稷(조직)公의 아들인 서애 영의정 유성룡의 외손자로 인조 때 강원도 관찰사와 이조참판등 많은 벼슬을 하였고 나중에 이조판서 겸 양관대제학에 추증된 18세손 조수익은 조선시대때 수 많은 공적을 남겼다.
조유성은 명종 때 목사를 역임했다. 학자로 이름난 18세손 조수긍(조수익 이조참판 친동생-여주파) 봉림대군(훗날 효종대왕:조선 제17대 왕)의 사부로 천거되었다.
조위일은 제자백가에 통달했으며 천명도해(天命圖解)를 저술했다.
과거 급제자는 조시겸(趙時謙, 1721 辛丑生) : 문과(文科) 영조26년(1750)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연(趙演, 1721 辛丑生) : 문과(文科) 중종3년(1508) 알성시 을과(乙科), 조병일(趙炳一, 1859 己未生) : 문과(文科) 고종29년(1892) 별시4 을과(乙科) 등 83명이다.
집성촌은 강원도 원성군(現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내천리,
충북 충주시 이류면과 가주동 일대, 충북 충주시 중원군 노은면 수룡리 일대,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홍문리, 충북 괴산군 송평리등이다.
순창조씨는 2000년 현재 17,923명이다.
한편 순창의 다른 이름인 옥천을 본관으로 한 옥천조씨(玉川趙氏)는 2000년 현재 49,847명이다.
( 성씨 전문기자 )
순창조씨대종회 사무차장 겸 순창조씨청장년회 사무국장
한국조씨청년연합회(KCN) 사무총장
조대주(趙大柱) 참의공(팔송)파 29세손 배상
오전에 조긍상(現 순창조씨대종회) 회장님과 조근호 대종손 원장님께 조병우(평택파 30세손 前 순창조씨대종회장) 명예회장님의 부인 故 홍난표 사모님의 부고 소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