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새빨개지는 면목동의 하이디
배우 이유진(34). 그녀는 지난해 10월 14일 3년여 동안 사귀던 한 살 아래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선수 출신의 감독 김완주씨와 결혼식을 올려 뭇 연인들의 갈채를 받았다. 8일 오후 서울 신사동 신구중학교 인근 한 카페에서 이유진을 만났다.
그녀는 20대 같은 새색시였다. 서울 면목동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거짓말을 하면 양쪽 눈언저리와 볼이 유난히 빨개져 ‘하이디’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 등의 작품에서는 예외지만 말이다. 신혼생활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솔직하고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남편이 굉장히 훈남인데 자면서 방귀를 얼마나 세게 뀌는지 아침에 알람시계가 필요 없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던 진면모를 하나둘씩 알아가면서 진정한 일심동체가 뭔지를 배우고 있어요.”
그녀는 운동선수 출신 신랑을 만난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모르는 말씀이라며 ‘폭로’했다.
“지난 설 연휴 특집 프로그램 방송에서 동료 연예인 남편과의 씨름 대결에서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혔어요. 체구가 훨씬 컸는데도 말이죠. 알고 보면 우리 신랑은 허당이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키가 큰 만큼의 포용력과 배려심을 가져 자상하다”고 자랑했다.
아버지 만나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그녀는 혼혈인이다. 아버지는 주한미군으로 1976년 충남 천안의 전주이씨 가문의 한 장녀와 결혼해 이듬해 그를 낳았다. 여고를 갓 졸업한 이씨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운명처럼 파란 눈의 남자에게 반했다. ‘코쟁이’ 신랑감과의 결혼을 허락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사랑은 국경을 넘는다’는 신념을 믿고 큰 절을 올렸다. 그러나 집안 식구 아무도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날로 집을 나갔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 뱃속엔 유진이 숨을 쉬고 있었다. 완고하던 외할아버지도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하지만 유진이 네 살 무렵 생이별의 슬픔이 닥쳤다. 주한미군 일부가 철수하면서 그녀의 아버지도 명단에 포함된 것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세 식구가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으나 어머니와 외가 친척이 완강히 반대하는 바람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더군요. 저는 그때부터 외할아버지 호적에 딸로 입적됐어요. 어머니와 자매 사이가 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 거죠.”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얼굴이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속상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어머니가 외로워하는 것이 못내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매년 새 학기마다 가족관계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 가장 싫었어요. 외할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적어내는 것이 참기 힘든 슬픔이었죠. 그러나 담임선생님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도록 ‘내 아버지는 미국 사람이고, 한국에 없기 때문에 외가 호적에 올라 있다’고 설명했죠.”
이씨는 지난해 결혼식 때 잠깐이나마 아버지를 찾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찾은 뒤 후유증이 걱정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돌아가셨을까봐 걱정도 되고, 이제 와서 만나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 솔직히 겁이 나 그만뒀다”고 밝혔다.
신앙 독실한 외할머니 손에 자라
어머니가 일을 했기 때문에 그녀는 기독교 신앙이 독실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서울 망우동 송곡여고를 졸업한 그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딸이 열심히 공부해서 의과대학에 들어가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끼가 남달랐다. 고3 담임교사가 연극영화과에 지원하라고 권할 정도였다. 그러나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어머니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연예계와 상관없는 서울여대 생물학과에 들어갔지만 타고난 재능은 숨길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불꽃같은 한순간의 사랑을 끝까지 지키는 억척같은 여인이다. 전통자수 놓는 것이 특기. 모네와 고흐의 작품 등을 수놓았다. 한국화 자수를 포함해 150점에 이른다. 언젠간 자수 작품 전시회를 열어드릴 계획이다. 그땐 미국에 있는 아버지도 찾아보고 초청할 작정이다.
이유진은 아직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마음속엔 늘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고 했다.
“강원도 원주에 계시는 시부모님의 기도 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요. 시아버님은 서울에서 사업을 하시다가 예수를 믿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을 하고 계세요. 외할머니와 시부모님의 사랑을 꼭 보답할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그녀는 6년 전부터 국제구호 NGO 월드비전의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다. 굶주림으로 시달리는 에티오피아 어린이 3명과 국내 어린이 1명을 돕고 있다. 그녀의 꿈은 무의탁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행복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복지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1995년 슈퍼엘리트 모델로 방송계에 데뷔해 현재 남편과 함께 MBC 부부생활 프로그램 ‘부엉이’와 SBS TV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출연하고 있다. 그녀는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다고 했다.
“구한말 이 땅에 와서 생명을 살리고 인재를 키운 여선교사들의 삶과 애환을 연기로나마 재연해보고 싶습니다. 제 이미지와 맞지 않나요.”
글 윤중식 기자·사진 윤여홍 선임기자 yunjs@kmib.co.kr
전주이씨
전주이씨
2011.02.09 다음뉴스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