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은 ‘민족정신의 교과서’
국권 빼앗긴 직후부터 항일 무장 독립 투쟁
구한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산 인물
임정요인 권력 암투에 실망 아나키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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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지음/책보세/2만원 |
우리의 땅 만주를 무대로 활동한 독립투사들 가운데 우당 이회영(1867∼1932)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김좌진 안중근 신채호 안창호 이승만 등 숱한 독립투사들이 후세에 조명을 받았으나 유독 우당만은 그러하지 못했다. 그는 10대조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이고, 부친 이유승은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정승·판서만 9명이 나올 정도로 삼한갑족의 명문 집안 출신이다.
서울 명동성당 일대 땅은 모두 우당의 재산이었을 정도로 부호였지만, 정작 본인은 이런 부귀영화를 뒤로한 채 조선이 국권을 빼앗긴 직후부터 무장 독립투쟁을 펼치다 일경에 잡혀 여순 감옥에서 모진 고문 끝에 순국했다. 말 그대로 구한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으로 살다간 인물이다.
우당은 항일 무장투쟁의 후견 역할을 자임하며 ‘아나키스트’로 불렸다. 아나키즘은 오늘날 공산주의 이념에 오염된 부정적인 용어로 통용되지만, 항일독립운동 당시에는 일제를 타도한다는 의미의 무정부주의 운동이었다. 1927년 9월 중국 톈진에서 조선 중국 타이완 베트남 등 7개국 대표들이 모여 일제에 맞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했는데 조선에서는 우당과 신채호 등이, 중국에서는 루쉰 등이 참여했을 정도로 당시 아나키즘은 나라 빼앗긴 선각 지식인들의 사조였다. 예컨대 우당의 아나키즘 운동은 독립운동의 한 방략이었지 마르크스 이념을 추종한 것은 아니었다.
1910년 우당은 44살 때 가을 추수 직후 명동 일대 땅을 팔아 당시로선 거금이었던 600원(3000억원 정도)을 마련해 이시영 전 부통령 가족을 비롯한 모든 식솔 60여명을 이끌고 동만주로 이주했다. 만주는 당시로선 한민족의 영토로 광범위하게 인식돼 많은 한인들이 이주했다. 1년 뒤 400원을 들여 김동삼 등과 힘을 합해 길림성 통화현 합니하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1920년까지 10년간 3500여명의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으니 독립군 사관학교 그 자체였다. 훗날 청산리 전투나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궤멸시켜 큰 공을 세운 독립군들의 요람은 바로 우당이 만든 신흥무관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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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생도들의 훈련 모습이다. |
우당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 요인들 사이의 권력 암투에 실망을 느낀 나머지 새로운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아나키즘을 채택했으며, 1924년엔 의열단을 조직해 조선총독부와 일제 요인들의 암살을 시도했고 1929년에는 김좌진 등과 손잡고 미국 등과 연대해 항일 무장독립투쟁의 전선을 더욱 확대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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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은 모든 재산을 털어 무장 독립운동에 바치고 자신 역시 군자금을 모으러 만주를 누비다가 일경에 잡혀 고문으로 순국한 멸사봉공의 전형이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
그는 또 당시 반가 집안에서 흔히 있는 재산 싸움은커녕 늘 형제간 우애가 돈독했고, 특히 집안 재산이었던 노비들을 모두 풀어주는, 진실한 의미의 자유인이었다. 저자는 “선생의 집안은 6형제로 매우 번성했다. 형제 모두가 화합하고 즐거워하여 그 우애가 마치 악기를 서로 맞춰 연주하듯 즐거웠고, 산앵두나무의 만개한 꽃과 같이 화사하였으니, 온 집안에 즐거운 기운이 가득 찼고 형제간 우애의 소문이 온 서울 시내에서 으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혁명적 소질이 풍부하여 사회 통념을 뛰어넘는 과감한 행동으로 그의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는 집안에 거느리던 종들을 자유민으로 풀어주고, 더 나아가 남의 집 종들에게도 높임말을 쓰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당시의 양반들이나 판서의 집안 자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당치않은 짓’이었다”고 평했다. 백야 김좌진도 만주로 이주하기 직전 노비들을 모두 풀어줬다. 구한말 반가의 지식인이었던 이회영은 지도층의 의식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로 손색없다고 저자는 풀이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회영 개인의 일대기에 국한하지 않고 보재 이상설, 단재 신채호, 김좌진 등 이회영과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을 통해 당시 항일 독립운동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국가와 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지도층의 의식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이회영을 ‘살아있는 민족정신 교과서’이자 ‘지나간 미래상’이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우당은 훗날 이승만 정권 이후 후대가 아나키스트란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린 나머지 조명받지 못한 인물”이라면서 “그의 생애는 한 점의 오류도, 한 올의 삿됨도 보이지 않는다. 식민지시대에 이들이 있었기에 ‘망국노(亡國奴)’의 자존과 명예가 조금은 지켜질 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우당의 손자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