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적형 - 광개토·장수 등 ‘공적’
장지명 - 무덤의 지명이 왕호로
휘 형 - 生時이름 따른 유리왕광개토왕은 고려시대인 12세기에 편찬된 ‘삼국사기’에 나오는 왕호다. 장수왕 3년(414) 세워진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그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다. 이는 ‘국강상(장지명) + 광개토경평안(업적) + 호태왕’의 세 부분 또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 호칭이다.
중국에서는 광개토왕이란 왕호는 사용하지 않고 호태왕, 호태왕비로 부르고 있다.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해 ‘영락대(태)왕’으로도 불린다.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광개토왕과 장수왕 등의 왕호는 고구려 왕호 가운데 치적이나 특성을 나타내는 왕호로 ‘훈적(勳績·공적)형 왕호’로 분류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나오는 28명의 고구려왕의 왕호를
분석하면 장지(葬地·무덤)의 지명을 왕호 또는 시호로 사용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사냥터인 민중원(閔中原)의 한 석굴을 자신의 무덤으로 사용할 것을 유언한 4대 민중왕을 비롯해 5대 모본왕, 9대 고국천왕부터 18대 고국양왕까지 모두 12명의 왕호가 이른바 ‘장지명형 왕호’로 분류된다.
또 평양천도 이후 23대 안원왕부터 25대 평원왕까지 3명의 왕호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8명의 고구려왕 가운데 시호가 없는 보장왕을 제외한 27명의 왕 가운데 최소 12명, 최대 15명이 장지를 왕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유리왕처럼 생시의
이름이 왕호로 된 경우는 ‘휘(諱)형 왕호’로, 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처럼 대왕호를 갖고 있는 3왕은 ‘대왕형 왕호’로 분류되기도 한다.
한편 노태돈 서울대 교수는 ‘삼국사기’ 에 기록된 고구려왕 가운데 4세기 이전의 왕호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으며 5세기 이후 어느 한 시기에 추가로 수정한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