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이씨 영해이씨
분적된 본관[편집]
전주 이씨에서 갈라진 대흥 이씨와 영해 이씨가 있다. 대흥 이씨(大興 李氏)의 시조는 전주 이씨 22세에서 분관한 대흥군(大興君) 이연계(李連桂)이다. 대흥군은 고려 말기에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과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다. 대흥군은 태조 이성계와 재종간 임에도 불구하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조선 개국을 반대하였다. 영해 이씨 시조 이연동(李延東)은 완산 이씨(完山 李氏) 이립전(李立全)의 후손(後孫)이라고 하였다.
이연계와 이원계[편집]
그의 이복 형 이원계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부정적이었고, 고려에 충성을 바칠 것을 애써 설득하기도 하였으나 끝내 그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 이원계는 1388년 죽으면서 아들들에게 자신과는 다르니 숙부를 따를 것을 유언하며 죽었다. 그의 6촌 형 대흥군(大興君) 이연계(李連桂)는 고려말기에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과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역임했다. 이연계 역시 사람을 보내 그의 새 왕조 수립을 만류하였으나, 조선 태조는 듣지 않았다. 실망한 이연계는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으로 낙향하였고, 이후 이연계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여 대흥 이씨로 분관하였다.[24]
- 조선 태조 (Taejo of Joseon, 李成桂)
- 조선 태조(Taejo of Joseon, 李成桂)
완산 이씨와의 관계[편집]
완산(完山)은 전주의 백제시대 지명으로 완산 이씨(完山李氏)는 전주 이씨의 이칭이다. 파별(派別) 또는 개인의 기호(嗜好)에 따라 '전주 이씨' 또는 '완산 이씨'를 선택하며, 두음법칙(頭音法則)을 따르지 않고 본음에 따라 '리씨'라 선택하기도 한다. 한 때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도 다른 이씨와 차별성을 두기 위하여 '리씨' 사용을 권장한 적도 있다. 북한에서는 두음법칙을 따르지 않고 '리씨'라고 사용하고 있다.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전라북도 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이한(李翰)이며,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한의 22세손이다. 전주 이씨로 임명되었다.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가 고려에서 벼슬을 지내고, 조선을 개국하였다. 전주 이씨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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