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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동김씨 돌림자

신안동김씨

2018.03.30

시대의 명현으로 칭송되는 것은 화려한 관직보다 고귀한 희생 때문이다. 병자호란...순절하였다. 김상용의 아우인 청음 김상헌은 월정 윤근수, 우계 성혼의 문인으로...




안동 김씨(김선평)는 왕건을 도운 개국공신이었지만, 고려 시대 내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해 향역을 세습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고려 시대 동안 단 한 명도 문과 합격을 못하다가 김계행이 600년 만인 1480년(성종 11) 50세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다.

그러다 김상헌의 증조 대인 김영, 김번 형제가 문과에 합격하면서 안동 김씨는 문호가 크게 신장된다.

김번이 김상헌의 증조 서윤공이다.









김상용은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문인으로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90년(선조 23) 문과에 합격한다.

김상용은 문과 합격 후 10년이 되지 않아 당상관(승지)에 오르는 등 환로가 탄탄하였다.

광해군 때 폐모를 반대하다 한동안 원주에 우거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병조, 예조, 이조판서로 중용되었다.

1630년에는 신하로서는 최고 영광인 기로소에 들어갔고, 2년 후 정승에 발탁된다.









김상용이 한 시대의 명현으로 칭송되는 것은 화려한 관직보다 고귀한 희생 때문이다.

병자호란 당시 그는 빈궁, 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로 피난하였는데, 청나라에 강화도가 함락되자 남문루에서 자결한 것이었다.

평소 담배를 피지 않던 그가 화약 상자 위에 앉아 담뱃불을 피워 순절하였다.










김상용의 아우인 청음 김상헌은 월정 윤근수, 우계 성혼의 문인으로 1590년(선조 23) 진사가 되었고, 1596년(선조 29) 문과에 합격한다.

수찬, 부교리 등의 청요직을 거쳐 광해군 즉위년에 문과 중시에 합격하여 사가독서의 특전을 누린다.

응교, 직제학, 승지를 역임하며 승승장구 하였으나, 실력자 정인홍의 회퇴변척(조식의 변호를 위해 이언적, 이황을 비판)에 반박하다 광주부사로 좌천된다.

1613년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이 사사될 때, 인척 사이라는 이유로 파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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