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군주 연산군 금표비 옮겨라”…전주이씨 종파 고양시에 민원
국민일보 입력 2006.04.12 03:10
[쿠키 사회] 조선시대 연산군에게 조상들이 죽임을 당한 전주 이씨 온령군(溫寧君·태종의 후궁소생 중 셋째 아들)파 후손들이 자신들의 종중 땅에 세워져 있는 연산군 금표비(경기도 지방문화재 제88호)를 옮겨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10일 고양시에 따르면 온령군파 종중은 지난달 15일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 10의 2 선영 입구에 연산의 금표비를 그냥 둘 수 없다'며 금표비 이전을 요구하는 공문을 시에 접수했다.
온령군 후손들은 공문을 통해 "금표비는 패륜 군주 연산이 사냥터를 정해 놓고 백성의 출입을 막은 것으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발견 당시 문중의 착오로 토지사용 승낙을 해줬지만 종친들의 원성을 사고있고 원래 위치도 아닌 만큼 금표비를 종중땅 밖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후손들은 "갑자사화(1504년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복위문제로 일어난 사화)에 연루돼 태종의 증손인 무풍군이 참형 당하고 무풍군의 아버지 우산군과 아들 등 6부자가 귀양길에 올랐다가 한 날 한 시에 사약을 받은 뒤 복권돼 선영에 모시게 됐다"며 "이러한 사연에도 불구, 묘지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가까운 곳에 금표비가 세워져 있는 것은 조상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오는 21일 문화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종중측의 요구에 대해 타당성을 검토한 뒤 이전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금표비는 연산군이 사냥에 방해가 된다며 높이 147㎝, 가로 55㎝, 두께 23㎝ 크기의 화강석 비에 '금표 내에 들어오는 자는 참한다'는 내용을 한자로 새겨 넣은 것으로 그동안 땅 속에 묻혀 있다 90년대 중반 묘지를 정비하던 온령군파 후손들에 의해 발견돼 현 위치에 세워졌다.국민일보 쿠키뉴스제휴사/경기일보 고양=김창우·오정희기자kimcw@kgib.co.kr
10일 고양시에 따르면 온령군파 종중은 지난달 15일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 10의 2 선영 입구에 연산의 금표비를 그냥 둘 수 없다'며 금표비 이전을 요구하는 공문을 시에 접수했다.
온령군 후손들은 공문을 통해 "금표비는 패륜 군주 연산이 사냥터를 정해 놓고 백성의 출입을 막은 것으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발견 당시 문중의 착오로 토지사용 승낙을 해줬지만 종친들의 원성을 사고있고 원래 위치도 아닌 만큼 금표비를 종중땅 밖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후손들은 "갑자사화(1504년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복위문제로 일어난 사화)에 연루돼 태종의 증손인 무풍군이 참형 당하고 무풍군의 아버지 우산군과 아들 등 6부자가 귀양길에 올랐다가 한 날 한 시에 사약을 받은 뒤 복권돼 선영에 모시게 됐다"며 "이러한 사연에도 불구, 묘지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가까운 곳에 금표비가 세워져 있는 것은 조상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오는 21일 문화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종중측의 요구에 대해 타당성을 검토한 뒤 이전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금표비는 연산군이 사냥에 방해가 된다며 높이 147㎝, 가로 55㎝, 두께 23㎝ 크기의 화강석 비에 '금표 내에 들어오는 자는 참한다'는 내용을 한자로 새겨 넣은 것으로 그동안 땅 속에 묻혀 있다 90년대 중반 묘지를 정비하던 온령군파 후손들에 의해 발견돼 현 위치에 세워졌다.국민일보 쿠키뉴스제휴사/경기일보 고양=김창우·오정희기자kimcw@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