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0.12 03:19
흑자를 내는 기업, 부채비율이 낮거나 내부 유보율(자본금과 비교해 사내에 적립해둔 자금 비율)이 높은 코스닥 기업이 줄줄이 퇴출되고 있다. 기존의 투자 지표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시 풀어 읽는 경제기사
- ▲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그전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부채를 마구 끌어다 쓰며 확장 경영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계기로 빚이 많은 대기업이 줄줄이 무너지며 국가 부도 위기 상황까지 촉발하자 정부는 기업들에 부채비율을 200% 이내로 맞추도록 하는 등 빚을 줄이라고 강제했습니다. 당시 기업 부채비율이 평균 400%에 달했으니 엄청난 압박이었던 셈입니다.
가혹할 정도의 부채 구조조정을 강제한 결과, 15년이 지난 지금은 기업의 부채비율이 100% 안팎으로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젠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요? 최근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 폐지된 일부 기업의 사례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몇몇 회사의 경우 빚이 많지도 않고 내부에 쌓아둔 자금이 충분한데도 상장 폐지되거나 부도가 났습니다. 부채비율이 낮다고 해서 믿을 만한 기업이라고 볼 수는 없는 셈입니다. 오늘은 기업들의 부채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이 더 부실한 기업인가요?
외환위기의 경험에서 보듯 기업의 부채가 자산에 비하여 지나치게 많으면 그 기업은 파산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설사 파산까지 가지 않는다 해도 부채가 많아질수록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채권자들은 돈을 빌려주기 꺼릴 것입니다. 그러면 기업은 추가적으로 빚을 더 얻어 쓰기 위해 채권자들에게 더 높은 이자를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갈수록 높아지는 자본 조달 비용은 기업에 부담이 되고 결국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하지만 기업이 부채를 무조건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적정한 부채를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채를 이용함으로써 기업이 얻는 혜택은 무엇인가요?
부채를 적절히 이용하면 이른바 '레버리지(leverage)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자본(부채)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을 적게 들이고도 이익을 많이 올리는 것으로, 지렛대 효과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어, 10억원의 자기자본으로 1억원의 수익을 올리면 자기자본 이익률(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것)이 10%가 됩니다. 반면 10억원 중 5억원을 부채를 통해 조달한 경우 1억원의 수익을 냈다면 자기자본 이익률이 20%로 두 배가 됩니다. 물론 부채를 쓴 뒤 손실을 낸다면 자기자본만으로 사업을 하는 경우에 비해 자기자본 대비 손실률이 훨씬 커지게 됩니다.
또 기업은 부채를 활용하면 법인세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은행이나 회사채 투자자와 같은 채권자에게 지급하는 이자는 비용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법인세는 총 매출에서 각종 비용을 뺀 뒤에 계산되는 순이익에 대해 매겨지는데, 이자는 일종의 비용이기 때문에 이자 지출이 많을수록 납부해야 할 법인세는 줄어들게 됩니다.
부채를 통한 자금 조달은 그 기업에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좋은 투자 기회 혹은 사업 기회가 있다는 것을 시장에 알리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어떤 새로운 투자에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한다면, 시장에서는 '그 새로운 투자 기회라는 것이 추가적으로 짊어지게 되는 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감당하고 남을 정도로 좋은 것이라는 확신이 그 기업에 있구나'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이처럼 기업에 있어서 부채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하게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이 부실한 기업이라고 말할 수 없고, 반대로 부채비율이 낮다고 해서 건실한 기업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부채 수준이 적정한지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적정한 부채비율이 몇 %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부채는 투자자금으로 활용돼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이자 부담이 늘어나 기업에 자금 압박을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채의 적정 수준은 산업 특성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가령 건설업이나 조선업은 실질 부채가 아님에도 장부상 부채로 기록되는 '선수금(先受金)'이란 항목이 있기 때문에 부채비율이 일반 제조업에 비하여 높게 나타납니다. 금융업도 예금자나 투자자 등 타인(他人) 자본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최적의 부채비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채의 적정성 여부는 동종 산업 내의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부채는 절대적인 수준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도 중요합니다. 기업의 부채비율이 낮은 것이 겉으로는 기업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낮은 부채비율이 수익성이 낮은 자산을 팔고 재무구조를 개선해 기업을 효율화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게 된 것인지, 단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증가시켰기 때문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또 기업의 안정성을 평가할 때 장기 부채와 단기 부채의 비율도 따져봐야 합니다. 기업의 부채 총량이 적더라도 단기 부채 비율이 높다면 기업이 일시적인 위기 상황에 빠질 때 채권자가 바로 상환을 요구할 수 있어 기업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채가 적고 사내(社內) 유보금이 많다는 것은 기업이 미래에 수익을 올릴 만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성장성이 떨어져 오래 존속하기 힘든 기업이라는 징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최근 가계 부채와 공기업 부채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부채를 둘러싼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과도하게 확산될 경우 기업의 건전한 부채 사용이 지나치게 억제될 우려가 있습니다. 부채를 적절하게 사용해 안정성과 성장성의 균형을 맞춘다면 기업을 성장시키고 경제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쉽게 배우는 경제 tip : 자기자본이익률(ROE·Return on Equity)
기업의 자금은 자기자본과 타인(他人)자본으로 나뉘는데, 자기자본은 주식회사의 경우 주주들이 투자한 자금을 말합니다. 자기자본이익률은 주주의 자기자본 대비 당기순이익을 나타내는 비율입니다. 따라서 자기자본이익률은 주주들이 투자한 금액으로 얼마의 수익을 올렸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퀴즈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자본(부채)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을 적게 들이고도 이익을 많이 올리는 것을 '부채의 ○○○○ 효과'라고 합니다.